고지도류

해동지도

해동지도

(제작시기: 1750년대 초, 규격: 47.0×30.5cm, 구성: 8책)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이 지도집에는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천하도>), 외국지도(<중국도>, <황성도>, <북경궁궐도>, <왜국지도>, <유구지도>), 관방지도( <요계관방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제8책의 팔도총도와 제 4책의 서북피아양계전도는 회화식 대형 전도이며, 나머지 대부분의 지도들은 도지도, 도별 군현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있다.

해동지도는 당시까지 제작된 모든 회화식 지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실상 지도집 안의 모든 자료들은 이 지도책자가 편집된 시점의 상황이 동일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도지도의 경우 지도 및 지도 여백에 적힌 설명문에는 1730년대 중반경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는 반면, 지도의 뒷면에 적혀 있는 설명문에는 1740년대의 상황이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군현지도의 지도 부분에는 대체로 1720-1730년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戊申亂으로 인해 1728년(정조 4)부터 1736(영조 12) 폐지된 경상도 안음현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군현지도들은 이 지도집을 위해 새롭게 그려진 것은 아니다. 도면의 지도 부분이 오려붙여진 흔적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오려붙여진 원본 지도는 1730년대에 비변사에서 지역 정책을 논의하는 데 활용한 초기 비변사지도와 동일하다. 비변사 팔도구관당상제는 효과적인 지역파악을 위해 비변사 내에 각 도별 전담자를 두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숙종 때 처음 시도된 이 제도는 영조대 초반인 1730년대에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해동지도에 실린 군현지도들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도들을 활용한 것이다.

팔도 구관당상제 자체가 도별 지역 파악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작성된 지도들도 도별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해동지도의 군현지도들이 지형지물의 표시방향, 산계, 수계의 표시 등에 있어서 같은 도 안에서 통일성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도 별로 편차가 나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군현지도의 여백에는 호구, 전결, 곡물, 군병, 건치연혁, 산천, 군명, 고적, 역원, 서원, 불우, 토산 등의 항목과, 방위를 표시하는 방면주기가 들어 있다. 호구, 전결, 곡물, 군병 항목과 방면주기는 대부분의 군현지도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으나, 건치연혁에서 토산에 이르는 항목들은 일부 군현지도에서만 발견된다. 호구, 전결, 곡물, 군병 항목 등 군사적, 사회경제적 상황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을 기록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도별로 심한 편차가 보인다. 다만 경기도, 경상도의 모든 군현과 전라도 일부 군현의 경우에는호수나 인구수가 모두 표시된 점, 양안상의 토지인 원전답과 실제 경작되는 토지인 실전답 수치가 모두 표시된 점, 건치연혁에서 토산에 이르는 항목이 포함된 점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통일성을 갖춘 이들 군현지도의 설명문은 대체로 1748년(영조 24)- 1750년(영조 26)의 상황까지 반영되어 있다. 1750년(영조 26)의 통계자료가 경기도 적성현 경작지 면적 기록에 활용된 점이 지도집 편찬 시점의 하한선이 된다.

서울지도 설명문에 기록된 훈련도감 금군 등 군영 관련 내용이 1751년(영조31)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점, 1750년(영조 26)부터 시행되는 균역법에 관한 내용이 지도집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1751년(영조 27) 초에 폐지된 경상도 7진보에 관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은 이 지도집 편찬 시점의 상한선이 된다. 결국 해동지도는 1750년대 초, 구체적으로는 1750년(영조 26)- 1751년(영조 27) 사이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청도, 평안도, 함경도 군현지도에는 備圖, 즉 비변사지도를 참조하여 수정했음을 나타내주는 쪽지가 첨부되어 있다. 쪽지에 기록된 비변사지도는 1리 방안으로 된 기호식 군현지도집, 즉 후기 비변사지도를 의미한다.

비변사에서는 초기의 회화식 군현지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1740년대 후반부터 1리방안의 대축척 군현지도집을 도별로 제작해 활용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비변사와는 다른 기관이 초기 비변사지도를 바탕으로 후기 비변사 지도를 참고해 해동지도를 편찬했음을 말해준다. 영조대 중반경에 비변사와 함께 지도 및 지리지 제작을 주도하고 있었던 유일한 기관은 홍문관이었다.

해동지도는 지도를 중심으로 지리지를 결합한 측면이 강한 반면 영조대 후반에 편찬된 여지도서는 지리지를 중심으로 하고 지도를 부도로 활용한 책자이다.

해동지도는 홍문관이 주도하는 정책 자료 편찬의 전통이 여지도서로 결실을 맺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각 군현지도마다 도로를 빼놓지 않고 그려넣은 점은 이 지도집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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