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겨울철 행사

갈무리 작업이 끝나고 나면, 마당에 횃불을 켜고 품앗이로 밤새 이엉을 엮는다. 하루에 1명당 보통 100여 바람을 엮었다. 1바람은 3발 정도로, 보통 짚단 25단 정도가 든다. 이엉을 엮어 지붕을 갈아 씌우고. 겨울철엔 농사에 필요한 멍석과 섬, 삼대기, 짚신 등을 만들며 이윽고 설을 맞이하게 된다. 설과 보름을 전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많은 행사가 치러졌다.
동지팥죽
지금도 동지 때는 동지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을 삶아 걸러서 팥죽을 쑨 다음 쌀을 넣어 끓인다. 쌀이 퍼질 무렵 미리 만들어둔 수수 ‘옹심이’를 집어넣어 끓이면 동지팥죽이 된다. 잡귀를 내쫓기 위해 이 동지팥죽을 집어 구석구석 뿌리는 집도 있다. 동지 때는 절에 불공드리러 가는 사람이 많다. 절에서도 팥죽을 쑨다.
물매 놓기와 대청소
섣달 그믐날 2, 3일 전에 설을 맞이하기 위해 집안의 대청소를 한다. 먼저 방다닥의 갈 자리(갈대로 엮어 만든 자리)를 걷어내어 묵은 먼지를 전부 털어낸다. 그리고 진흙을 묶게 타서 입지(볏짚의 속대로 만든 빗자루)에 묻혀 방바닥과 흙벽 및 부뚜막 등에 바른다. 이렇게 ‘물매’를 놓고 나서 집 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한다. 부잣집에서는 설날 아침 밥제사에 쓸 놋그릇을 기왓가루도 닦아 설 준비를 한다.
섣달 그믐날의 만두 빚기
설을 쇠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만두이다. 섣달 그믐날 밤의 ‘국제사’는 물론이고 초하룻날 이후에 찾아오는 세배꾼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만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밀가루를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 화전을 많이 했을 당시에는 매물가루로 만두피를 만들고 그 안에 김치, 무, 두부 등을 다져 넣어 만두를 빚었다. 이 만두로 국을 끓여 그믐날 밤에 ‘국제사’를 올리고 나서, 집안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두 모여 세배꾼들에게 줄 만두를 밤새워 빚는다. 섣달 그믐날 밤에 일찍 자는 아이가 있으면 눈썹에 매물가루를 하얗게 칠해 놓고, 아침에 ‘밤새 눈썹이 쇠었다.’ 놀려대기도 한다.
국제사와 법제사
섣달 그믐날 밤에는 반드시 설을 쇠러 오신 조상님들께 만둣국을 떠놓고 ‘국제사'(‘만둣국 제사’, ‘만둣국차사’라 부르기도 한다.)를 지낸다.
‘국제사’를 올릴 때는 먼저 아랫방(안방) 윗목에 병풍을 치고 그 앞에 참자리(참대나무 껍질로 엮어 만든 자리로 여는 때는 사용하지 않고 제사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사용한다.)를 깔아 준비한다. 병풍이 없는 집에서는 벽에 참자리르 치기도 한다. 참자리 위에 상을 차려 시향을 받지 않은 조상 수대로 만둣국을 올려 놓고, 이에 김치와 술잔을 곁들여 조상님들을 위한다. ‘국제사’에서는 과일이나 주과포를 올리지 않고, 지위(지방)나 신주(참나무로 깎아 만든 위패) 역시 모시지 않으며 고축도 하지 않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따로 ‘국제사’를 올리지 않고, 새해 아침에 만둣국과 메밥을 지어 ‘국제사’와 ‘밥제사’를 동시에 지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떤 집에서는 그믐날 밤의 ‘국제사’만 올리고 설날 아침의 ‘밥제사’를 올리지 안흔 경우도 있다. ‘밥제사’때는 고기, 적, 채소, 나물, 과일 등의 반찬을 전부 갖추어 지방을 모셔 놓고 조상님들을 위한다. ‘무축단잔’으로 고축을 하지 않으며, 술잔도 조상 수대로 단잔만 부어놓고 배례만 2, 3번 정도 한다. 배례는 남자들만 했으나 근년에 들어와 여자들도 참가하게 되었다.
세배
‘국제사’와 ‘밥제사’가 끝나고 나서 부모님들께 세배한다. 예전에는 세뱃돈을 주는 일이 없었으며, 주로 아이들에게 덕담했다. 세배가 끝나고 나면 조상님께 올린 음식을 내려 가족끼리 음복을 하고 세배꾼 받을 준비를 한다. 집안 어른은 사랑방에서 세배꾼을 기다리며, 여자들은 음식을 정리하여 상을 준비한다. 젊은이. 아이들은 가까운 이웃부터 시작하여 동네 어른들에게 두루 세배를 다녔다. 새 배꾼에게는 주로 만둣국과 술을 대접했으며 아이들에게는 만둣국과 집에서 만든 과질 등을 내놓았다. 동네 어른들에 대한 세배가 끝나고 나면, 초사흗날부터는 멀리 떨어진 친척 집이나 처가 등에 세배하러 간다. 보름 전까지는 세배꾼이 들었다.
산지당 제사
대부분의 마을에서 일 년에 두 번씩 산지당 제사를 올리고 있다. 봄 제사는 대개 정월 初丁이나 14일, 혹은 정초에 길일을 잡아 올리고, 가을 제사는 7월 초의 길일이나 7일, 8월 14일, 9월 9일 등에 올린다. 도가 집과 제관은 산지당 제사를 며칠 앞두고 마을사람들의 생기와 복덕을 가려 정한다. 도가 집과 제관 집에는 처마 끝이나 울타리 주위에 松針을 꽃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각 집에서 추렴한 祭費로 돼지나 닭, 주과포, 감주 등을 정성스레 장만하여 제사 당일 밤이나 새벽에 도가 집과 제관들이 산지당에 올라가 산신을 위하고 내려와, 준비된 음식을 모든 마을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용알뜨기
정월 14일을 ‘여름날’이라고 한다. 예전 ‘여름날’에는 매우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으며, 그중 제일 먼저 치어지는 게 ‘용알뜨기’ 행사이다. 이날, 집안의 주부들은 첫닭이 울기 전에 우물가에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첫닭이 울면 물을 길어 오는데, 이를 ‘용알’ 뜬다고 한다. 제일 먼저 ‘용알’을 뜨게 되면 그 해 집안의 운수가 좋다 하여 각 집의 주부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우물가에 나간다. ‘용알’을 뜨기 전에 짚을 틀어 만든 또 바리(똬리)를 우물에 집어넣고 바가지로 물을 뜬다. 우물 안에 또 바리가 들어 있으면, 이미 자기보다 앞서 누군가가 물을 길어 간 게 된다.
여름날의 오곡밥과 가을날의 보름 차 사
이 ‘용알’로 ‘여름날’ 아침에 오곡밥을 해 먹는다. 이날 입쌀. 조 찹쌀, 수수쌀. 팥, 콩, 밤 등을 넣어 만든 오곡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 짐을 하라고 했다. 여자들의 경우는 오곡밥을 아홉 그릇 먹고 삼을 아홉 광주리 삼으라고 했다. 그만큼 부지런하라는 뜻이다. 오곡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으로 먹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는다고 한다. 숟가락으로 오곡밥을 먹으면 여름에 김맬 때 넓은 고랑을 차지한다고 한다. ‘여름날’ 아침 아이들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아이들이 오면 삼밭의 삼이 자라질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는 삼이 잘 크라고 키 큰 사람을 일부러 데려다 오곡밥을 먹이는 경우도 있다 ‘여름날’ 오전에 여자들은 남의 집에 가는 게 아니라고 한다.

정월 보름을 ‘가을날’이라고 한다. ‘가을날’ 아침 집안에 따라서는 뫼밥을 짓고 나무새를 갖추어 조상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이 경우, ‘여름날’에는 상을 차리지 않고 조상도 위하지 않으면, ‘가을날’의 보름제사 때는 반드시 상을 차리고 지방을 모신다

부스럼깨기와 더우팔기
여름날 새벽에 ‘부시럼께기를 한다. 이날 새벽에 일어나 남에게 말을 하기 전에, 그 전날 미리 볶아놓은 콩을 한 움큼 입에 접어넣고 소리나게 깨물어 먹는다. 그리면 여름에 부스럼 같은 헌데가 나질 않고 잔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주부들은 정지에서 오곡밥을 짓기전에 솦을 어루만지면서 ‘그릇이 깨지나 무쇠가 깨지나’라고 외친다. 그리 하면 그 해 그릇이나 무쇠가 잘 깨지지 않는다고 한다.
병아리 까기와 새몰기
예전에 여름날 아침에 ‘병아리까기’와 ‘새몰기’를 했다. ‘병아리까기’는 집안의 나이 많은 주부들이 미리 준해 둔 솔방울을 마당에 확 뿌리면서 ‘병아리깠다, 병아리깠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그러면 그 해 병아리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새몰기’는 각 집안의 가장들이 한다. 대문 밖에 나가 들톀을 가리키며 ‘참새, 들새, 훠이 훠이’ 라고 외친다. 이렇게 새를 쫓는 시늉을 하게 되면 그 해 새들에 의한 곡식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남들보다 일찍하는게 좋다고 한다.
귀밝이술
‘여름날’ 아침에는 짠지와 찬물을 먹지 않는다. 짠지를 먹으면 쐐기에 쏘이며, 찬물을 마시면 여름에 소나기를 맞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아침엔 찬물 대신 막걸리를 한 사발 마셨다. 이를 ‘귀밝이술’이라 부른다. 이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농점
‘여름날’ 새벽에 오곡밥을 짓고 난 숯검정을 12개 부뚜막에 올려놓고, 그 사그라진 모습으로 일년 12개월의 점을 쳤다. 숯이 젖어 있으면 그 달엔 비가 많이 오고, 말라있으면 그 달 가문다고 한다. 또 어떤 집에서는 수수깡 속에 콩을 열 두개 집어넣고 풍년을 긴한 다음, 그 콩의 상태로써 점을 치기도 했다. 콩일 불어 있으면 그 달 비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비가 적다고 한다. 또한, ‘여름날’ 아침에는 남의 집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걸 매우 꺼렸다. 그 대신에 키 큰 사람이 들어오면 그 해 삼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반겼다.
복조리
지금도 ‘여름날’새벽에 복조리 장사나 마을 청년들이 복조리를 팔러 다닌다. 이 복조리를 사서 두개를 한쌍으로 묶어 부엌이나 안방 출입문 문턱에 매달아 놓고, 그 안에 돈이나 실타래 등을 집어넣는다. 현재는 조리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보름에 사두었던 복조리를 일년내내 사용했다고 했다. 복조리를 사면 그 해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달맞이
‘가을날’ 오후 마을 청년들이 마을 주위의 동산이나 버덩에 올라가 소나무 가지 등을 꺽어 둥그렇게 쌓아놓고 황덕불을 피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녁 무렵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 올라가 풍물을 치고 논다. 보름달이 뜰 무렵, 준비해 간 술과 떡을 바쳐 차린다. 이윽고 보름달이 뜨면 짚으로 만든 횃불을 휘휘 돌리면서 , ‘망우리 망우리’ 외치면 달을 행해 일년 신수가 좋게 해달라고 절을 하며 빈다. 보름달이 떠오르는 위치를 보고 그 해 풍흉을 점친다. ‘떡봉’에 떠오르면 그 해 대풍이 들고 ‘밥봅’에 떠오르면 풍년, ‘죽봉’에 떠오르면 흉년이라고 한다. 또한 ‘무달'(색깔이 하얀 달)이 뜨는 해는 비가 많이 오고 붉은 달이 뜰 때는 가문다고 한다.
횃싸움
정월 보름이나 16일 밤에는 횃싸음을 했다. 장대 끝에 저릎을 한 뭉치 매달아 감고 그 끝에다 관솔을 꽃아 횃불을 만든 다음, 이를 돌리면서 옆 마을 아이들과 횃싸움을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네청년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합세하기도 했다. 이기는 쪽에 풍년이 든다고 하여, 밤새 싸웠다.
귀신 달개는 날
‘귀신 달개는 날’이라 하여 정월 16일 밤에는 신발을 방에 들여 놓거나 엎어 놓는다. 신발을 감춰놓지 않으면 귀신이 와서 신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는 신발 주인을 잡아간다고 한다. 또 마루 기둥이나 문턱에다 체를 걸어놓고, 체구명에다 실 달린 바늘을 하나 꽂아 놓는다. 그러면 구신이 그 바늘로 체구멍을 세어보다 어느새 날이 밝아 쫓겨간다고 한다. 체 밑에는 화롯불을 피우고 목화씨를 태우며 또 매운 고추를 불에 꽃아 놓기도 한다. 귀신을 쫓기 위해서이다.